사람들은 양을 몰듯이 소를 몰듯이 자신을 몰아갈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만약 허허 벌판에 놓여져있다면 자신은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결국은 그 사람은 자신을 몰아서 어떤것을 향해야 한다.
만약 내가 허허 벌판에서 배가 고프다면 먹을 걱을 찾으려고 자신이 자신을 움직영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디로 가기위해서는 자신의 방향이 맞는지 아니면 어디를 잘 가고 있는지 시도때도 없이 점검해야 한다.
자신은 분명 자유로운 허허벌판에 있지만 우리는 어떤것이 부족할때는 그것을 채울필요를 느껴서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몰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만이 목적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배고파서 어떤것을 먹으러 갈때도 다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인연이 되는 사람과 같이 행동할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가족과 함께 그 것을 찾는것또한 의미있는 삶일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어떤 사람이 맛있는것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움직인다.
내가 찾는게 아니라 누가 찾아놓은 것을 보고 목적을 향한다는 말이다.
사실은 그것에 가 있으면 미리 찾았던 사람이 먹을것을 다 먹은 후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찾으면 아주 가까운 거리에 먹을것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굳이 사람들이 거기에 많이 있다고 하는 곳으로 간다.
우리는 잘 생각해보면 소와 양같이 누가 가라고 하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신이 자신을 몰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방향으로 지시대로 몰임당하는게 아니라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몰아갈수 있음에도 자신의 몰아감을 모르거나 포기한다.
마치 소와 양때가 그것에 길들여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은 비유적인 말이다.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은 모두 그렇게 정의된다. 누가 정해진 목적지를 정해주지 않았고 누가 그곳에 도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나를 몰아서 그 목적지에 간것이고 그곳에 도달하면 내가 나를 몰아서 간것이지 누구의 몰이로 그렇게 간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그런것이다. 우리의 삶은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니 정해진 삶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의미를 어떤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몰아가면서 움직이면서 목적성을 찾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