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일등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부자가 존재하고 행복한 사람이 존재함을 분명하게 그것에 존재를 알고 있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존재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알것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수없이 많은 사람중에 몇안되는 존재는 반드시 그 존재가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 다시 여기서 질문 왜 그것이 나여야만 하는가이다.
아니 다시 질문하겠다. 그게 꼭 내가 아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상한 질문인가 별 희안한 질문인가?
자 쉽게 설명해보겟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때 어떤것의 결과가 됨을 분명히 알고있다.
자 다시 돌아와서 그 일을 하면서 나는 그 확률을 높은 일을 해내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나여야지만 하는 법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상태이다. 어떤것도 될수 있고 어떤것도 안될수 있다.
자 다시 말해보겠다. 그 확률은 언제나 존재함에도 우리는 왜 내가 안될때는 그것에 안됨을 원망하고
내가 되었을때는 그것을 나의 실력이나 내가 이루어낸 일이라고만 생각하는가?
확률은 언제나 반반아니면 그 이상 그 이하일수 있다. 그것의 확률은 언제나 존재함에도 왜 우리는 그것을 원망하고 그렇게 된것을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는가?
어느 하나도 정해진 결과값은 없음에도 있다고 믿는것은 아닌가 잘 생각해보라.
앞에서 말했듯이 당연한 것은 없고 정해진것은 없다. 그것은 바로 존재함이다. 불확실성과 확실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안되면 안될수도 있는 것을 인정하고 되면 감사함을 인정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것에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그확률성을 존재함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산다. 앞에서 말했듯이 안되면 안되는것을 원망하고 되면 그것이 당연한줄알고 오만해 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어느것도 불확실성을 인정할수 있는 사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을 원망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지 않게 된다.
이상한 소리이겠지만 이것을 세상을 살아보면 알게 된다.
세상의 불확실성을 인정할때 그때부터 세상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을 인정하면 그만큼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짐을 나는 느낀다.